1988년 세계유산협약에 가입한 한국이 38년 만에 처음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를 자국 땅에서 개최한다. 2026년 7월 19일부터 29일까지 부산 벡스코가 그 무대다. 숫자 하나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일본은 가입 16년 만인 1998년 교토에서 개최했고, 중국은 2004년과 2021년 두 차례나 유치했다. 한국은 그 사이 어디에 있었는가.
🌍 38년이라는 공백, 그리고 2023년 위원국 진입의 계산
세계유산위원회는 196개 협약 당사국 중 선출된 21개국으로만 구성된다. 개최 자격은 위원국 지위가 전제 조건이다. 한국은 2023년이 되어서야 위원국 자격을 획득했고, 이듬해 곧바로 유치 신청에 나섰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한국의 세계유산 외교 전략이 상당히 늦게 가동됐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뒤늦은 출발이 반드시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지금의 시점은 전략적으로 유리한 측면이 있다. 2026년 현재 전 세계 등재 유산은 1,248건에 달하며 그 중 문화유산이 972건, 자연유산 235건, 복합유산 41건이다. 등재 건수가 포화 상태에 가까워지면서 위원회 내부에서는 신규 등재보다 기존 유산의 보존 관리 강화 쪽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한국이 의장국을 맡아 이 의제를 주도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셈이다.
🏛️ 의장국이 가지는 실질적 영향력
개최국이 의장국을 맡는 전례에 따라 이번 회의 의장은 이병현 전 주유네스코 대사가 맡았다. 의장직은 단순한 의례적 역할이 아니다. 33건의 심사 안건 순서를 조율하고 논의의 흐름을 설계하는 권한이 있다. 외교적 언어로 표현하면 '어젠다 세팅 파워(agenda-setting power)'다. 한국이 이 자리를 활용해 자국 유산인 갯벌 확대 등재 심의(25일 예정)를 유리하게 배치할 수 있다는 점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를 두고 이해충돌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사실 모든 개최국이 동일한 구조적 이점을 누려왔다. 중요한 것은 그 이점을 정당성 있는 방식으로 활용하느냐다.
🗺️ 한국 갯벌 확대 등재, 왜 지금인가
2021년 등재된 한국의 갯벌은 서남해안 4곳(순천-보성, 신안, 고창, 서천)으로 구성된 연속유산이었다. 이번에는 여수, 고흥, 무안, 서산 등 4곳을 추가하는 2단계 확대 등재를 신청했다. 자문기구인 IUCN(세계자연보전연맹)이 이미 등재 권고 의견을 냈기 때문에 확대 등재는 사실상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짚어야 할 구조적 질문이 있다. 🌊 왜 처음부터 8곳을 묶어 신청하지 않았는가. 문화재 당국의 설명은 단계적 등재 전략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각 지자체 간 합의, 환경부와의 조율, 보존 상태 검증 등 행정적 장벽이 그만큼 높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세계유산 등재가 단순히 국가 위상의 문제가 아니라, 내부 거버넌스 역량의 문제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확대 등재가 완료되면 한국의 갯벌 세계자연유산은 총 8개 구역으로 늘어난다. 이는 황해 전체를 아우르는 생태적 연속성의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황해를 공유하는 중국이 자국 갯벌 일부를 이미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한 상황에서, 한국의 확대 등재는 황해 생태축 보전의 국제적 주도권과도 연결된다.
⚠️ 등재 이후가 더 어렵다 — 보존 실패의 구조
세계유산 등재가 끝이 아니라는 사실은 독일 드레스덴 엘베 계곡의 사례가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2004년 등재됐던 이 유산은 교통 문제 해결을 이유로 교량 건설을 강행한 결과 2009년 목록에서 삭제됐다. 개발 논리와 보존 가치가 정면충돌할 때 국가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다.
한국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 조선왕릉 장릉 인근 '왕릉 뷰' 아파트 건설 논란과 종묘 주변 재개발 갈등은 등재 이후 보존 관리가 얼마나 취약한 구조 위에 놓여 있는지를 드러낸다. 특히 개발 이익과 유산 보존이 충돌하는 도심 지역에서는 지자체, 민간 사업자, 문화재 당국 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세계유산센터의 모니터링만으로는 실효적 통제가 어렵다. 등재 심의보다 등재 이후 거버넌스 설계가 더 본질적인 과제라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 세계유산 외교의 미래 — 부산 개최가 남겨야 할 유산
이번 부산 세계유산위원회는 33건의 안건을 심의하는 실무 회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국이 국제 문화유산 담론에서 어떤 역할을 자임할 것인지를 선언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세계유산 청년 전문가 포럼과 현장 관리자 포럼이 부산·경주·수원·울산 등지에서 병행 개최되는 것도 단순한 부대 행사가 아니다. 차세대 유산 관리 인력과 네트워크를 한국이 구심점이 되어 형성하겠다는 전략적 의도가 담겨 있다.
결국 이번 개최의 성패는 회의 자체의 운영 수준이 아니라, 이후 한국이 세계유산 보존 분야에서 얼마나 일관된 신뢰를 쌓아가느냐에 달려 있다. ✅ 갯벌 확대 등재가 완료된다면, 그 다음 질문은 명확하다. 8개 구역의 통합 관리 체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그리고 개발 압력이 가해질 때 한국 정부는 드레스덴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가. 부산에서 열리는 11일간의 회의는 그 답을 요구하는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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