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펫보험 시장은 숫자만 놓고 보면 고성장 중이다. 보유 계약 건수가 전년 대비 55.3% 증가한 25만 건을 넘어섰고, 원수보험료도 1287억 원으로 61.1% 급등했다. 그런데 이 화려한 성장률 뒤에 불편한 진실이 하나 있다. 전체 반려가구 대비 실제 가입률은 여전히 2~3% 선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DB손해보험과 이마트가 '올라! 펫보험'이라는 이름으로 유통 채널 전용 상품을 내놓은 것은, 바로 이 구조적 역설을 정면으로 겨냥한 움직임이다.
📊 왜 펫보험은 이렇게 안 팔렸나
시장이 커지는데 가입률이 낮다는 건 수요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접근 방식의 문제임을 의미한다. 일본의 펫보험 가입률은 21.4%로, 국내의 약 10배에 달한다. 단순히 반려동물 문화의 차이라고 보기엔 간격이 너무 크다.
🔍 구조적 걸림돌 세 가지
국내 펫보험 시장이 좀처럼 대중화되지 못한 데는 복합적인 구조적 원인이 작용해 왔다. 첫째, 보험료 문턱이다. 중소형견 기준 월 3만~5만 원대 상품이 주류를 이루면서, 단순 비교만으로도 소비자의 심리적 저항이 컸다. 둘째, 가입 연령 제한이다. 기존 상품 대다수가 만 7~8세 이상 고령견의 신규 가입을 사실상 거부했다. 반려동물을 오래 키운 가구일수록 정작 보험이 필요한 시점에 가입할 수 없는 아이러니가 반복됐다. 셋째, 채널의 문제다. 보험 가입 경로가 동물병원이나 앱 기반 디지털 플랫폼에 집중되면서, 금융 친숙도가 낮거나 스마트폰 활용에 불편함을 느끼는 반려인들은 시장 바깥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 오프라인 유통이라는 새로운 접근각
이번 협업의 핵심은 상품 설계보다 '유통 철학'에 있다. 이마트는 전국 160여 개 점포망을 보유한 대형 오프라인 유통 채널이며, 반려동물 전문 브랜드 '몰리스'를 통해 사료·용품·미용·동물병원까지 수직 계열화한 반려동물 생태계를 이미 구축해두고 있다. 반려인이 사료를 사러 가는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보험 가입을 유도하는 구조는, 기존 펫보험 업계가 시도하지 않았던 방식이다.
✅ 이는 금융이 소비자를 찾아가는 방식이 아니라, 소비자의 일상 속으로 금융이 스며드는 방식이다. 카드사들이 편의점과 손잡고 금융 서비스를 확장했던 것처럼, 보험도 이제 생활 밀착형 플랫폼을 통로로 삼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산업 구조의 변화 신호로 읽힌다.
월 1만 원대 실속형 보험료 책정과 최대 만 12세 신규 가입, 갱신 시 최대 20세까지 보장이라는 설계는 기존 시장의 공백을 노골적으로 파고든 전략이다. 특히 고령견 보장 확대는 단순 경쟁 우위를 넘어, 그동안 시장이 외면했던 소비자층을 처음으로 정식 타깃으로 설정했다는 의미가 크다.
⚠️ 낙관만 할 수 없는 이유
물론 구조적 장벽이 유통망 하나로 단숨에 허물릴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 오프라인 접점 확대는 분명 신규 유입 가능성을 높이지만, 보험 상품의 특성상 현장에서 즉각 가입 결정이 이뤄지기까지는 설명과 신뢰 형성이 필요하다. 마트 직원이 보험 상담까지 대응하기엔 역량의 한계가 있고, 이를 보완할 디지털 연계 프로세스나 전담 인력 배치 여부가 실질적인 전환율을 좌우할 것이다.
또한 가입 이후의 경험이 시장 확대의 진짜 변수다. 국내 펫보험 민원의 상당 부분은 보험료 대비 낮은 실질 보장률, 특정 질환 제외 조항, 갱신 시 보험료 급등에서 비롯된다. 초기 진입 문턱을 낮추더라도 가입 후 실망이 쌓이면 역효과가 생긴다. 이 부분은 상품 구조의 투명성과 직결된 문제다.
🔮 펫보험 시장, 어디로 향하는가
일본과 영국 등 펫보험 선진국의 공통점은 단순히 보험료가 저렴하다는 데 있지 않다. 수의료비 통계가 공개되고, 표준화된 보장 항목이 마련되어 있으며, 갱신 시 보험료 상한이 제도적으로 관리된다. 국내 시장이 가입률 2%의 벽을 진정으로 넘으려면 채널 다변화와 함께 이러한 제도 인프라가 동시에 성숙해야 한다.
이번 DB손보·이마트 협업은 그 출발점으로서 의미 있는 실험이다. 유통 생태계와 보험 산업이 결합했을 때 어떤 시너지가 나오는지를 국내 시장에서 처음으로 본격 검증하는 사례가 될 것이다. 성패는 가입 건수보다 유지율과 만족도로 판가름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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